필리핀은 왜 못 살까?
한 때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던 시기가 있었다. 1941년 아시아 최초로 국적 항공사를 운영 하였고 한국전쟁 때는 7천여명의 지원군을 파병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의 동남아시아연합(ASEAN)의 창설을 주도한 국가 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필리핀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좀 참담하다. 아키노(Aquino) 전 대통령 재임 후 부터 연 7%의 경제 성장률을 보이며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대부분 인프라 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 성장률이어서 일반 서민들이 체감하는 실질 경제 성장률은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임금대비 소비재와 공공재의 물가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생활고 만 더 심해지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한때 그렇게 잘나가던 나라가 이 지경이 된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필리핀의 구조적 문제점은 마르코스(Marcos) 정권의 실정과 부정, 부패에서 시작된다.
마르코스 대통령 임기 초(1965년)에는 적극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는 등 상당기간 성장을 지속하였지만 1970년에 재임을 염두해 둔 마르코스가 방만한 지출로 재정위기를 초래하였고 무리한 대외 차입금으로 대외부채가 급증했다. 필리핀의 대외 부채는 마르코스 재임 기간 동안 1962년 3억 6천만 달러에서 1986년 283억 달러로 급증한다.
이 대외 차입금이 필리핀의 인프라 건설과 국가 동력이 될 수 있는 제조업에 적절히 투자 되었다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었을 수도 있었지만 마르코스는 이 차입금을 자신과 관련된 국영기업에 유입시켜 비자금을 조성하는데 이용했다.
그리고 1983년 마르코스의 정적이었던 니노이 아키노(Ninoy Aquino) 상원의원이 암살 당하면서 위기에 몰린 마르코스 정부가 다량의 외화를 해외로 밀반출하면서 필리핀은 심각한 외환위기에 몰린다. 결국 1983년 10월 필리핀 정부는 모라토리움(Moratoriun)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에 일자리를 잃은 수 많은 필리핀 노동자들이 해외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 해외 근로자들의 외화 송금액으로 현재 필리핀 경제가 유지되고 있다. 현재 1,000만명의 필리핀 해외 근로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외화는 연 20조원에 이른다. 필리핀 국민들이 고물가 저임금의 비합리적 경제구조 속에서도 꾸준히 생활을 유지 할 수 있는 건 해외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이 언니 오빠들 덕분이다.
그러면 필리핀의 경제가 잘 나가던 시기는 언제 였을까?
필리핀은 1571년부터 1898년까지 약 32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 왔다. 그리고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으로 필리핀은 다시 미국에 양도 된다. 이에 대항하여 필리핀은 미국과 독립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었다. 그렇지만 소득은 있었다.
미국은 기존의 식민지배 방식인 자원 수탈과 시장지배의 식민정책을 펴는 대신 필리핀의 정치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경제적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미국의 개발 원조액을 바탕으로 필리핀은 2차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그 황금기가 1970년까지 이어졌다.
이 찬란했던 시기에 아쉬움이 있다. 이때 필리핀의 경제성장은 지나치게 미국의 원조에 의존했고 그 경제 발전의 효과가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가와 자본가는 성장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경제 발전은 농업에서 상업 그리고 중화학 공업을 거쳐 정보통신과 반도체 산업으로 이어진다. 원시 사회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국민들의 생산 수단은 오직 토지 밖에 없다. 토지를 가진 개개의 국민들이 농산물을 생산하고 잉여 산물을 저축하여 자본을 만들고 그 자본을 바탕으로 상업과 공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국가와 거대 자본가에 의해 산업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생산과 소비의 관점에서 일반 국민들의 생산 수단의 소유는 초기 경제 발전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리핀에서는 2차세계대전 후 일반 국민들이 토지를 취득할 수 있는 토지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여 대지주를 중심으로 한 부의 집중이 더욱 심화 되었다.
2차세계대전 후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식민 국가들이 미흡하지만 토지개혁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룬것에 비해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배 시절부터 이어져 온 대지주를 중심으로 한 비효율적인 경제구조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마르코스의 정적이었던 니노이 아키노(Ninoy Aquino) 상원의원의 부인인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전 대통령이 토지 개혁을 외치며 대통령에 당선 되었지만 본인도 대지주 가문의 딸이라는 모순과 토지개혁에 반대하는 대지주와 군부세력의 쿠테타로 인해 정세 불안과 경제 악화만 심화 되면서 토지 개혁은 실패로 돌아간다. 엄밀히 얘기하면 시도조차 못했다.
필리핀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실정과 부정, 부패 보다도 토지개혁을 통해 진취적인 자본가로 성장하는 탄탄한 경제 주체 세력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 뼈 아프다. 현재 필리핀에는 아주 잘 사는 놈과 아주 못 사는 사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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